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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0-30 20:30
왕부지의 이사(李斯)평가
 글쓴이 : 이윤화
조회 : 5,310  
왕부지의 『독통감론(讀通鑑論)』卷1 &nbsp;진시황(秦始皇) 이세(․二世)條 사론(史論)에 보이는 이사(李斯)평가

李斯는 일찍이 二世에게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는 당연히 인의의 속박을 없애야 하고 대신들의 諫爭하는 말들을 끊어야 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구속받지 아니하고 분명히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자를 막론하고 군주에게 이와 같이 말한 경우가 없었는데 李斯가 큰 소리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인가. 李斯는 일찍이 荀子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아울러 秦始皇과 더불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계략을 의논하여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찌 商 紂王의 아첨꾼이었던 飛廉․惡來 같은 사람도 차마 하지 못하던 말을 李斯는 거침없이 한 것인가. 설마 李斯가 확실하게 君主가 그렇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겠는가. 만약 秦 2세 같이 어리석지 않더라도 곧 秦始皇 같은 교만 방자한 군주 역시 이 같은 말을 받아들이고 견책하지 않았겠는가. 혹 李斯가 생각하길 후세 천하가 자신을 禍를 주도한 사람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 같은 원인은 모두 아니다. 원인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근심하는 심리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내몰았던 것이다.
李斯之對二世曰:⌈明主滅仁義之塗,絶諫爭之辯,犖然行恣睢之心.⌋盡古今槪賢不肖,無有忍言此者,而昌言之不忌.嗚呼!亦何至此哉!斯亦嘗學於荀卿氏矣,亦嘗與始皇謀天下而天下幷矣.豈其飛廉&#718;惡來之所不忍言者而言之不忌,斯之心其固以爲然乎?苟非二世之愚,卽始皇之驕悖,能受此言而不譴乎?斯抑謂天下後世之不以己爲戎首而無所恤乎?無他,畏死患失之心迫而有所不避耳.

무릇 죽음이란 것이 두려워 할 것이 아니고 실패 또한 근심할 것이 아니라면 왜 李斯는 하필 그런 잘못을 했겠는가. 앞에서 시작하면서 正道가 아닌 길을 가게 되면 뒤따른다해도 역시 功을 세워 自效할 수 없게 되며 후에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여도 적당한 계략이 없게 되고 물러나 스스로 있고자 하여도 적당한 방법이 없게 된다. 그리되면 반드시 실패가 걱정되고 죽음 또한 두렵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찌 차마 하기 싫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함께 얻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반드시 죽어야 할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듯 요행만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찍이 뜻을 바르게 세우면 후일 마지못해 하는 바가 없게 되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이나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일찍이 바르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게 되면 곧 필연적으로 실패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일단 이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되면 비록 이 같은 말을 하기 싫다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그리되면 처형당하기 전 아들들에게 했던 上蔡의 東門에서의 추억을 되살리며 탄식한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두려움에 肺肝이 먼저 自裂했을 것이다.(和案:『資治通鑑』 p. 278-280 참조 ) 李斯라고 하여 어찌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지니지 않았겠는가. 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고 걸어봐야 곧 엄동설한이 닥쳐옴을 안다(履霜堅冰至)”고 했으니 이로써 비유하여 사람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일찌감치 그 방비책을 세워 경계토록 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과를 보고 가리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가리는 것만 못한 것이다.
夫死亦何不可畏也.失不可患,而亦何必於失也.前所以自進者非其道,繼所以自效者非其功,後所以自保者非其術,退所以自置者無其方,則失果可患而死果可畏,欲無畏無患&#718;以不言其所不忍言,又奚得乎!天下無必死之塗,而亦無可幾幸之得.正志於早而後無所迫,則不忍不敢之心以全.早之不能圖度於正,迨其後失有形&#718;死有機,雖欲不爲此言而不得.不待上蔡東門之嘆,肺肝先已自裂.斯豈果無人之心哉?易曰:⌈履霜堅冰至.⌋辨人於早,不若自辨於早也.

(和案: 이 구절은 『資治通鑑』卷7 ⌈秦紀⌋3 二世皇帝 2年條에 대한 논평이다. 二世는 각지에서 반란이 더욱 기승을 부리자 여러 차례 李斯를 견책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사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爵祿을 중히 여기고 있었던 지라 결국 二世에게 아부할 수 밖에 없었다. (司馬光은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함)그리하여 상소하여 응답하길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신하에 대하여 능히 督責之術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申不害는 말하길,‘천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천하를 질곡으로 여긴다‘고 하는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신하에 대하여 督責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천하의 백성을 위하여 힘을 쓰는 것을 말한다. 즉 堯․禹가 그러하였다. 따라서 이를 ’桎梏‘이라 일렀다.’ 申不害․韓非의 高明한 法術을 익혀 督責之術을 시행함으로서 오로지 천하를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백성을 위해 고생한다면 이는 마치 백성의 노복이 되는 것과 같아 천하를 통치하는 군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니 존숭하기에 족하지 않다.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능히 督責之術을 시행함으로서 위에서 독단해야 하고 이러한 권력이 신하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을 때 비로소 仁義를 시행하는 길을 막을 수 있고 諫說의 논변을 끊을 수 있고 자기 마음 스스로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누구도 감히 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면 群臣과 백성들이 자기의 과실을 구하려 하여도 할 수 없을진대 어찌 감히 변란을 꾀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어서 『資治通鑑』에는 二世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고, 이 후 더욱 엄한 督責을 시행하고 백성으로부터 더욱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들인 자를 明吏라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자를 忠臣이라 하여 결국 거리에 반은 刑을 받은 이요 죽은 사람의 시체가 거리에 쌓여 있어서 진의 백성은 더욱 두려움을 갖게되고 反亂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資治通鑑』 p.267) 이하 二世 三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평이 전개되고 있다) &nbsp;(和案: 李斯의 평가와 관련하여서는 田靜,⌈司馬遷筆下的李斯⌋, &nbsp;『司馬遷與史記論集』,陝西人民出版社, 1995, pp.533 참조할 것)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三. 李斯以督責之術導諛勸淫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노하더라도 범할 수 없고 뭇 사람에게 원망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그러나 申不害와 商鞅의 말은 어찌 지금에 와서도 단절되지 아니하고 있는가. 뜻이 바르고 義가 분명한 것은 예컨대 제갈량이 그 좋은 모범이 되었고, 학식과 의지가 두루 넓은 것은 예컨대 王安石이 그 의도를 본받았다. 그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申不害와 商鞅의 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잠시 힘들더라도 오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계책을 펼 수 있었기 때문이다. 申․商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다만 그들의 계책만을 이용한 사람은 제갈량이었고, 그들의 실질을 이용하면서도 이름을 회피한 사람은 왕안석이었다. 그러나 李斯는 조금도 숨기거나 꾸미지 않고 그것을 더욱 드러나게 하였다. 李斯는 말하기를 “군주가 신하에게 대하여 매우 엄한 督責의 방법을 시행하면 &nbsp;諫爭의 길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고, 申不害는 말하기를 “군주에게 천하가 있으나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명하여 천하를 桎梏으로 여긴다는 것이다”하였으니, 신하의 諫爭을 끊고 질곡을 벗어나게 되면 군주는 그저 매일 刑名의 문건을 처리하는데 골몰하지만 아울러 주색과 游樂에 빠져 줄곧 그것을 즐기며 지내게 된다. 향락을 잊지 못하는 군주에 대하여 말하자면 어찌 이것을 兩得의 계책으로 쓰지 않겠는가.
人皆有不忍人之心,而衆怒之不可犯,衆怨之不可任,亦易喩矣.申&#718;商之言,何爲至今而不絶邪?志正義明如諸葛孔明而效其法,學博志廣如王介甫而師其意,無他,申&#718;商者,乍勞長逸之術也.無其心而用其術者,孔明也;用其實而諱其名者,介甫也;乃若其不容掩之藏,則李斯發之矣.李斯曰:⌈行督責之術,然後絶諫爭之路.⌋申不害曰:⌈有天下而不恣睢,命之曰以天下爲桎梏.⌋諫爭絶,桎梏脫,則雖日勞於刑名文籍之中,而眈酒嗜色&#718;佚游驕樂,可晏享而不輟.苟未忘逸豫之情者,惡能不以此爲兩得之術哉!

엄한 법을 집행하여 나라를 다스리면 군주는 편안하지만 천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는 편안해지지만 군주는 많은 힘이 들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계략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천하의 안정된 통치를 추구하는 군주가 아니더라도 편안히 만민의 위에 자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제갈량은 욕심 없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사에 임하였고 왕안석은 꾸밈없고 好學深思하면서도 名法을 기꺼이 받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견문을 통해 검소하고 부지런함으로서 내심 편안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어진 사람이 이럴진대 하물며 唐의 令狐綯이나 明의 張居正처럼 권세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 만약 그들이 李斯의 말을 읽고 그 말이 아첨과 음란함을 가져오게 한 것 인줄 알았더라면 면목이 없어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任法,則人主安而天下困;任道,則天下逸而人主勞.無一切之術以自恣睢,雖非求治之主,不能高居洸瀁於萬民之上,固矣.以孔明之淡泊而盡瘁也,以介甫之土木其形而好學深思也,然且樂奉名法者,何也?儉以耳目.勤以耳目,而心思從其康逸也.賢者且然,況令狐綯&#718;張居正之挾權勢者哉!使讀李斯之言,知其爲導諛勸淫之術也,能勿靦然而汗下與?

[이 게시물은 이윤화님에 의해 2005-03-07 09:14:59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자료실(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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